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파비우스 전략 (문단 편집) == 유래 == [[제2차 포에니 전쟁]] 초기인 기원전 217년, [[알프스 산맥]]을 넘어온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 바르카]]의 군대에 맞섰던 [[로마 공화국|로마]]는 [[트레비아 전투]]와 [[트라시메노 호수의 전투]]에서 대패를 당했고, 이때 로마군을 지휘했던 집정관 [[가이우스 플라미니우스]](Gaius Flaminius)도 전사했다. 로마 원로원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를 [[독재관]]에 임명했다. [[로마군]]의 통수권을 위임받은 파비우스는 한니발 군대의 뒤를 쫓아다니면서 식량징발대의 본대를 차단시키는 작전을 폈을 뿐 직접적인 싸움은 피했다. 지연작전으로 한니발 군대가 스스로 지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의 전략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 [[청야 전술|마을을 소개(疏開)하고 식수와 식량을 모조리 치우며,]] 모든 동맹시 및 식민시의 도성 문을 꼭꼭 걸어잠근다. * '''한니발의 본대와 절대 대결하지 않는다'''. * 한니발이 공격하는 동맹시는 아무리 위태로워도 무시한다. 다만 한니발에게 넘어간 곳은 공성력을 총동원해서 즉시 되찾아온다. * 한니발의 본대가 전투 중 난입하면 방어로 일관하고 절대 응전하지 않는다. * '''적 부대에 한니발이 없으면 바로 뛰쳐나가 때려잡는다'''.[* [[삼국지]]에 비슷한 일화가 나온다. 원소와 대결하느라 후방을 챙길 여유가 없던 조조가 유대와 왕충을 대신 보내 자신이 후방에 있는 척하면서 유비를 견제했으나, [[우주방어]]로만 일관하는 걸 보고 조조가 없다고 간파한 유비가 유대와 왕충을 사로잡는다.] * 이렇게 계속 기다리면서 지속적인 출혈을 강요하면 결과적으로 한니발의 군대는 지휘관이 1인뿐이라는 한계, 보급 부족, 병력 손실을 겪으며 점령지가 쪼그라들고 약화된다. 파비우스는 일부러 전면전을 피하고 청야전술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식량을 확보하려는 카르타고 군의 소규모 부대를 공격해 전멸시키거나 한니발의 본대와 떨어진 만만한 부대를 공격하는 식으로 대응하였다. 이런 전략으로 인해 가뜩이나 빈약한 보급 자체가 부족해진 한니발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들쑤시면서 어쩔 수 없이 목표였던 로마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전략적 요충지에서는 방어군이 유리한 지형에서 방어를 굳건히 하고 있었고, 이런 일련의 상황이 이어지면서 한니발 군의 사기와 전쟁 수행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한니발은 [[이탈리아 반도]]의 장화에 해당하는 지방에서 파비우스 막시무스의 전술에 휘말려 상당한 곤경을 치렀다. 파비우스의 전략은 한니발 스스로 말라죽게 하는 것이 목적인 지구전이었다. 한니발만 만나면 로마군은 맥을 못추고 패배하기 일쑤였지만 그렇기에 한니발과 굳이 싸우지 않고 그의 힘을 빼는 것이 승리의 지름길이 된다는 생각이었던 것. 싸우면 지니까 안 싸운다는 간단한 전술이었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그의 전략을 나약하고 비겁한 것이라며 이해하지 못했다. 로마인들의 생각으로는 정정당당하게 맞서싸우는 것이 당연한 것이기도 했고, 한니발의 군단이 이탈리아 내부를 휘젓고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인들의 경제적 피해는 매우 컸다. [[지구전]], [[소모전]] 문서에 나오듯이 이런 식으로 전쟁을 질질 끌고 적의 힘을 빼는 전략은 반대 급부로 아군에게도 피로감을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아무리 적이 무섭다지만 더 피해를 입기 전에 한번 싸우는게 더 낫지 않나?'라는 판단이 나오기 쉽다. 파비우스 외에도 불가피하게 이런 지구전 전략을 쓰다가 자국 여론의 반감 때문에 어려움에 처한 장수의 사례는 적지 않다. 그리하여 파비우스는 해임되고[* 한니발도 파비우스의 전략에 자군이 심히 고충을 받을것을 예상하여 약탈을 하되 파비우스의 영지는 건드리지 않은 반간계를 구사하였고 이게 제대로 먹혀서 파비우스가 한니발과 내통한다더라 라던가 파비우스가 일부 자기 영지만 지키고 있다는 음모론이 나왔다.] 강경파가 정권을 잡았지만, 그 결과는 [[칸나이 전투]]의 대패였다. 칸나이 전투의 대패로 로마인들은 파비우스의 전략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파비우스는 다시 독재관에 임명되어 지연전을 수행했고, 다시 한니발군은 지쳐갔다. 그리고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히스파니아]] 및 [[카르타고]] 공세가 성공하면서 전세가 일발역전되었고, 결국 로마는 전쟁에서 승리했다. 파비우스의 전략을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쿤크타토르(cunctator)"[* 직역하면 "굼뜬 사람", 의역하면 "[[굼벵이]]"라고 할 수 있겠다.]라며 비난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비록 단기간에 결판은 나지 않았어도 그의 전략이 결국 옳았다는 것이 입증되어 "지연자", "굼뜬 사람" 등의 비난섞인 호칭은 "지구전주의자"라는 명예로운 호칭으로 바뀌었다. 자세한 사항은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